산양 / 이건청 시인

한명희 | 기사입력 2018/11/30 [01:43]

산양 / 이건청 시인

한명희 | 입력 : 2018/11/30 [01:43]

 

▲     © 한명희



산양

이건청

 

 

아버지의 등 뒤에 벼랑이 보인다

아니 아버지는 안보이고 벼랑만 보인다

요즘엔 선연히 보인다.

 

옛날 나는 아버지가 산인 줄 알았다

차령산맥이나 낭림산맥인 줄 알았다

장대한 능선은 모두가 아버지인 줄 알았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푸른 이끼를 스쳐간 그 산의 물이 흐르고 흘러

바다에 닿는 것이라고

수평선에 해가 뜨고 하늘도 열리는 것이라고

 

그때 나는 뒷짐지고 아버지 뒤를 따라 갔었다

아버지가 아들인 내가 밟아야 할 비탈들을 앞장서 가시면서

당신 몸으로 끌어안아 들이고 있는 걸 몰랐다

아들의 비탈들을 모두 끌어안은 채

까마득한 벼랑으로 쫓기고 계신 걸 나는 몰랐었다

 

나 이제 늙은 짐승 되어 힘겨운 벼랑에 서서 뒤돌아보니

뒷짐지고 내 뒤를 따르는 낯익은 얼굴 하나 보인다

겨우겨우 벼랑 하나 발딛고 선 내 뒤를 따르는

초식동물 한 마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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