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무게 / 조영수시인

양경모기자 | 기사입력 2018/12/03 [23:14]

생각의 무게 / 조영수시인

양경모기자 | 입력 : 2018/12/03 [23:14]

 

 

 

생각의 무게

 

오대산 노인봉을 오르다가

엄지발톱이 새까맣게 죽어버렸다

생각의 무게를 내려놓지 못하고

너무 무겁게 지고 있었나 보다

 

바람의 무덤에 묻혀있는 겨울산은

슬픔 참아낸 산새울음소리를 안고 있어도

나무들의 잔가지 시린 어깨에는 절대로

생각의 무게를 실어놓지 않았다

 

산 그림자의 울먹임을 지워내는

온 산의 생각을 짊어진 나무들의 잔가지는

기억을 썩히고 있는 낙엽의 잔등을 밟으며

때 되면 그 무게를 말없이 내려놓는다

 

새까맣게 죽어버린 내 엄지발톱이

뿌리 추슬러 온전한 모양새를 찾을 때까지

쓸데없이 지고 다니던 생각의 무게를

조금씩 조금씩 내려놓기로 하자.

    

 

박수근 화백의 󰡐귀로󰡑앞에서

 

붓끝이 지나지 않은 곳에 숨어든 바람이

나지막하게 접어둔 어깨가 다정하다

 

가지 많은 나무가 헝클어놓은 길에서

그늘 지워내는 붓질은 맑아서 향기롭다

 

세상의 느슨한 자락에 찍힌 발자국들이

적시고 있는 눈시울은 부끄러워 더 뜨겁다

 

풍경안과 밖에 욕심 버리고 서 있는 여백을

지워내지 않는 빛의 손짓이 따뜻하다.

   

      

섭리(攝理)

 

강은 제 길을 찾아 흘러 보내야

바다와 몸을 섞을 수 있고

나무는 꽃향기를 멀리 보내야

실한 열매를 얻을 수 있답니다

 

새는 하늘을 멀리 벗어나야

푸른 잎 가득한 숲과 만날 수 있고

품고 있던 마음을 버릴 줄 알아야

따뜻한 이웃을 만날 수 있답니다

 

만남의 첫 걸음은 어디 부터이고

헤어짐의 끝자락은 어디까지인지

일러주지 않고 몸짓만 뒤채는 강은

멈춤이 없어야 길을 찾을 수 있답니다

 

세상 안과 밖을 휘돌아 가는 물길은

제 모습 잃지 않고 흐르면서도 고요하고

고요하면서도 흐름을 멈추지 않아야

지긋한 이름 하나 얻을 수 있답니다.

     

 

달에 대한 기억

 

낮달을 참하게 틔워놓은 맥주집 󰡐月光󰡑에서 우린 몇 번씩

접었다 편 제 그림자를 깔고 앉아 달보다 차가운 생맥주

를 마셨다. 생화라고 우겨대는 시든 여자들보다 더 뜨겁게

취하고 싶었다. 우린 남들이 죽여 놓은 뒷이야기를 휴대전

화에서 꺼내 취기 없이 마른안주로 씹었고, 여자들은 목숨

보다 질긴 시간을 바동대며 씹어댔다. 모두 달보다 더 맑

은 정신으로 󰡐月光󰡑을 나왔다.

 

봉분을 열고 나온 아버지 적 창부타령을 탁본해놓은 장터

󰡐月仙󰡑목로에서 우린 2차를 했다. 개밥바라기별이 감

나무에서 안고 있는 노을을 지워낼 때를 기다렸다가 한

사발씩 달을 권하지 않고 마셨다. 어둠이 달라붙지 않은

달빛이 온몸을 들쑤시며 타오른다. 󰡐月光󰡑에서 취한걸가

󰡐月仙󰡑에서 취한걸가. 참으로 오랜만에 그림자 없는 달

한 덩이씩 안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아무도 손닿지 않은 곳에

맵시 다듬어 숨겨두고 싶은 이야기

 

소곤대는 목소리로 칠흙의 눈빛을

다스릴 줄 아는 반짝이는 음표

 

내 어둠 겹겹을 걷어내면서

활활 타올라야하는 불씨

 

봄 숲 그윽한 자락에다 몰래

탁란(托卵)해 놓은 나의 시.

 

 

      

 

약력

·강릉시 주문진에서 출생

·월간문학신인작품상 수상으로 등단(1980)

·시집:『세상 밖으로 흐르는 강

네 안에서 내 안으로

꽃은 꽃으로 피게

시간 밖의 꽃밭

달에 대한 기억

·윤동주문학상, 한국예총예술문화상,

강원도문화상, 관동문학상, 강릉예술인상 수상

·문학의·집서울,한국시인협회,관동문학회 동인

·강원문인협회,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