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거룩 / 문성해

홍수연기자 | 기사입력 2020/10/20 [10:47]

나의 거룩 / 문성해

홍수연기자 | 기사입력시간 : 2020/10/20 [10:47] | 조회수 :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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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거룩

문성해

 

 

이 다섯 평의 방 안에서 콧바람을 일으키며

갈비뼈를 긁어 대며 자는 어린 것들을 보니

생활이 내게로 와서 벽을 이루고

지붕을 이루고 사는 것이 조금은 대견해 보인다

태풍 때면 유리창을 다 쏟아 낼 듯 흔들리는 어수룩한 허공에

창문을 내고 변기를 들이고

방속으로 쐐애 쐐애 흘려 넣을 형광등 빛이 있다는 것과

아침이면 학교로 도서관으로 사마귀 새끼들처럼

대가리를 쳐들며 흩어졌다가

저녁이면 시든 배추처럼 되돌아오는 식구들이 있다는 것도 거룩하다

내 몸이 자꾸 왜소해지는 대신

어린 몸이 둥싯둥싯 부푸는 것과

바닥날 듯 바닥날 듯

되살아나는 통장잔고도 신기하다

몇 달씩이나 남의 책을 뻔뻔스레 빌릴 수 있는 시립도서관과

두 마리에 칠천 원 하는 세네갈 갈치를 구입할 수 있는

오렌지마트가 가까이 있다는 것과

아침마다 잠을 깨우는 세탁집 여자의 목소리가

이제는 유행가로 들리는 것도 신기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닦달하던 생활이

옆구리에 낀 거룩을 도시락처럼 내미는 오늘

소독 안 하냐고 벌컥 뛰쳐 들어오는 여자의 목소리조차

 

참으로 거룩하다

 

 

《문성해 시인》

 

경북 문경 출생. 영남대학교 국문과 졸업. 1998<매일신문> 신춘문예,

2003<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으로『자라』『은근한 소용돌이』

『입술을 건너간 이름』『밥이나 한 번 먹자고 할 때』『내가 모르는 한 사람』등이 있다.

 

 

 거룩한 것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저 높은 곳에 위치한 것만이 아님을 살아가면서, 나이 들어가면서 우리들은 절로 깨우치게 된다. 행복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가까운 곳에 지천으로 널려있음을 우리들은 알게 된다. 단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거나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으로 인하여 수많은 소소한 행복을 우리들 스스로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시인은 말한다. 행복과 마찬가지로 거룩한 것 또한 그리 멀리 있지 않다고. “다섯 평의 방 안에서 콧바람을 일으키며 / 갈비뼈를 긁어 대며 자는 어린 것들”,  “아침이면 학교로 도서관으로 사마귀 새끼들처럼 / 대가리를 쳐들며 흩어졌다가 / 저녁이면 시든 배추처럼 되돌아오는 식구들”, “바닥날 듯 바닥날 듯 / 되살아나는 통장잔고”, “몇 달씩이나 남의 책을 뻔뻔스레 빌릴 수 있는 시립도서관”, “두 마리에 칠천 원 하는 세네갈 갈치를 구입할 수 있는 /

오렌지마트가 가까이 있다는 것”이야말로 거룩한 일상이며 이런 소소하지만 결코 소소하지 않는 생활이야 말로 거룩한 것이라고. 이쯤 되면 시인은 거룩한 생활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변을 둘러보면 거룩한 것 투성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가 마시는 한 잔의 커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편안한 피아노 연주곡 한 편, 거룩한 저녁이다. 시인 덕분에 거룩한 한 상 잘 받았다.(홍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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