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으로부터 온 편지 / 유종인

홍수연기자 | 기사입력 2020/10/20 [10:54]

정신병원으로부터 온 편지 / 유종인

홍수연기자 | 기사입력시간 : 2020/10/20 [10:54] | 조회수 :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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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으로부터 온 편지

 

 

         유종인

 

가상이 내 몸에 알을 스는 밤, 이다

먼 기억엔 따뜻한 정신 병원에 쓸쓸함으로 갇혔던

누이가 있다, 그때 그녀는 정신 분열증이었으나

나는 정신 미분열증으로 고생하던 청춘, 이었다

그래서 지금 생각, 한다 모든

病名이 있는 입원은 행복하다 갇혀서

따뜻할 수 있는 자들의 夢幻

구름처럼 떠다니다 낮잠에 빠지는 사람들 속에

어린 꽃잎 같은 소녀가 남몰래 내 몸에 편지를 숨겼다

문득 내 몸은 붉은 우체통이 되었다, 집에

전화 연락 한번 해달라 부탁한 그 쪽지엔

탈출보다 극심한 폐쇄의 속살이 얼비쳤다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여기는 온갖 것들의 세상, 그곳으로부터

아무런 편지 없을 때, 나는

오지랖 좁은 들을 쓰며 그대 병동의 밤을

가끔 떠올린다, 이곳은 아직 수용되지 않았을 뿐

증세를 다 호명할 수 없어 그냥 놔둔 露天 병원!

 

따뜻한 간호사가 필요하다, 아직

꽃나무들, 먼 새들과 함께 어떤 증세로든 살아 있어

무릇 야릇한 소음과 정적으로 희망적이다

누이가 앓고 있는 만큼 소녀가 꿈꾸는 세상만큼

세상의 얼굴은 더 늙어 보이고, 늙어서 고치는 것은

목숨을 다치는 일뿐, 누군가 아직도 식물의 맘으로

동물의 상처를 앓고 있다

 

 

《유종인 시인》

 

1968년 인천 출생. 1996년『문예중앙』에 시「화문석」외 9편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에 당선되었다. 시집으로 『아껴 먹는 슬픔』 『교우록』 『수수밭 전별기』등이 있다.

 

 

 

 젊었을 적 나는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이 정상적인 사람들이고, 입원하지 않고 이 폭력적인 세상을 활보하고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할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세상은 순수하고 여린 사람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들은 조롱거리가 되기 일쑤다. 그렇게 세상을 크게 앓은 사람들은 자신을 놓아버리기도 한다. 그들에게 세상은 온전한 정신으로 버티기에는 기이한 공룡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사라졌고 약육강식의 법칙에 의하여 더 강력한 병을 지닌 인간들이 태어났다. 세상은 그들의 것이다.

 

 세상은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곳은 아직 수용되지 않았을 뿐 / 증세를 다 호명할 수 없어 그냥 놔둔 露天 병원!”이다. “누군가 아직도 식물의 맘으로 / 동물의 상처를 앓고 있”는, 상처입은 영혼들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는 따뜻한 세상은 요원한 꿈이기만 한 걸까?(홍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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