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와 노인 / 최남미

양경모시인 | 기사입력시간 : 2019/01/05 [11:04] | 조회수 : 30

 

 

가로수와 노인

최남미

 

한 노인이 가로수 아래에 주저앉아 있다. 노인의 옆에는 손수레가 놓여 있다. 그는 바닥에 흩어진 종이를 주워 수레 위에 차곡차곡 올려놓고 있다. 그런데 오른손은 명치 쪽에 붙여놓고 왼손만 사용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얼굴 표정도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불편한 몸으로 폐휴지를 담은 수레를 끌고 가다가 엎지른 모양이다.

얼마 전에도 이 길을 지나가는 노인을 본 적이 있다. 그 때도 한 손으로 손수레를 힘겹게 끌고 있었다. 그가 기우뚱거리며 걸음을 옮길 때마다 손수레도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날도 노인은 낡은 티셔츠와 면바지를 입고 먼지가 뽀얗게 앉은 검은색 구두를 신고 있었다. 불편한 몸으로 다니려면 운동화가 제격인데 그는 늘 구두를 신고 다닌다. 소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에 나오는 권 씨처럼 말이다. 권 씨가 막일을 하며 힘겹게 살면서도 지식인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윤이 나게 닦은 구두를 신고 다녔던 것처럼, 그도 그가 누렸던 빛나는 시간을 말해주는 구두를 포기하지 못해서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가 앉아 있는 길의 가로수는 그에게 작은 그늘조차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보호대에 기대선 가냘픈 가로수는 수목 물주머니까지 차고 있다. 물주머니에 연결된 호스를 통해 뿌리에 물을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물주머니를 찬 채로 서 있는 가로수는 흡사 링거를 맞고 있는 환자처럼 보인다.

얼마 전, 솔올마을에는 가로수 교체 공사가 있었다. 1999년 이 마을이 들어섰을 때 심은 메타세쿼이아 대신 이팝나무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메타세쿼이아가 우람하게 자라면서 길을 좁혀가자 불편함을 호소하는 주민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져서 메타세쿼이아는 다른 곳으로 보내지고 말았다. 그런데 5월부터 시작된 때 이른 더위로 어린 이팝나무들은 잎이 마르기 시작했다. 결국 따가운 햇살로부터 이팝나무를 살리기 위해 물주머니를 공급한 것이다.

저 나무들이 가로수 구실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찌는 듯 더위가 찾아올 때마다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던 메타세쿼이아가 그리워진다. 불편한 몸으로 폐휴지를 줍기 위해 이곳저곳을 다녀야하는 노인도 시원한 그늘이 그리울 텐데…….

나는 메타세쿼이아 나무를 좋아한다. 메타세쿼이아는 봄이 시작되면 겨우내 갈무리해 둔 연둣빛 순을 뾰족뾰족 내밀며 건재함을 알리고, 포근한 햇살이 내리비칠수록 점점 짙은 초록으로 변하다가 무성한 잎으로 성장한다. 곁가지도 우후죽순처럼 무질서하게 자라지 않고 매끈하게 자라서 좋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올라치면 싱그럽던 잎은 서서히 황톳빛을 띠다가 하나 둘 잎을 떨구고 겨울을 맞이한다. ‘메타세쿼이아라고 부를 때 입안에서 맴도는 울림 또한 기분 좋게 한다. 그렇게 나를 설레게 했던 가로수가 뿌리 채 뽑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눈물이 왈칵 쏟아지며 가슴이 아려왔다.

가로수 아래에 앉아있는 노인의 모습이 강제 이주당한 메타세쿼이아처럼 쓸쓸하게 느껴진다.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던 가로수가 이제는 귀찮은 존재가 되어 버림받은 것처럼, 저 노인도 젊은 시절에는 구두를 신은 발에 땀이 채일 정도로 열심히 살았을 텐데 이제는 늙고 병든 몸이 되어 뒤안길로 물러나 있으니 말이다.

몇 해 전 삽당령 가는 길에 보았던 은행나무가 생각난다. 시골길을 따라 줄지어 서있던 은행나무들이 도로 확장공사로 인해 길가에 널브러져 있었다. 가을 날, 바람이 불 때마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흩날리며 연출하는 화려한 군무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나마 쓸모 있다고 생각되는 나무는 뿌리부분을 흙뭉치로 감싸서 새로운 땅으로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 은행나무는 밑동이 잘린 채 길가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다. 조경업자들이 상품가치가 없는 나무라고 점찍는 순간 버림받은 것이다.

버려진 은행나무도 이사 갈 준비를 하고 있는 은행나무와 똑같은 존재였다. 길손들에게 서늘한 그늘이 되어주었으며,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을 빨아들이고, 가을이면 온 몸을 노랗게 물들여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다. 그런데 모든 일을 결정할 때 돈의 가치로만 판단하는 사람들에 의해 생사가 갈리고 말았다. 족히 사십년은 됨직한 은행나무가 삶을 다한 채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젊은 날 열정을 쏟아 부었던 회사로부터 권고사직을 당한 직장인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다.

그 은행나무에 비한다면 메타세쿼이아는 다행인 셈이다. 물을 좋아하는 습성을 지닌 그 나무가 경포 생태 저류지로 옮겨져 뿌리를 내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마을에서 살 때보다 더 늠름한 모습으로 자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저류지를 돋보이게 하는데 한 몫을 한다면 강제이주 당한 처량한 신세가 아니라 명품나무로 거듭날 수도 있으리라.

메타세쿼이아를 밀어내고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이팝나무도 내년쯤이면 작은 그늘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사회의 주류에서 물러나 주변인이 된 노인이 그 그늘 아래에 앉아 잠깐이라도 더위를 식힐 수 있다면 이팝나무도 제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겠지. 영원할 것 같았던 가로수의 운명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것처럼 사람의 일 또한 영원한 것은 없다.

노인은 흩어졌던 폐휴지를 다 정리했는지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우뚱한 몸으로 손수레를 움켜잡더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노인이 걸어가는 길에 늘어선 이팝나무는 내년 봄이면 이밥처럼 새하얀 꽃을 몽실몽실 피우겠지. 폐휴지를 줍다가 지친 노인이 그 가로수 그늘 아래에 들어서면 몽글몽글 피어나는 꽃향기가 그의 쓸쓸한 마음을 보듬어 줄 수도 있으리라.

 

 

 

 

 

 

약력

 

강릉 출생

한국문인신인문학상으로 등단 (2003)

가톨릭관동대학교 일반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강릉시립도서관, 강릉교육문화관 독서논술강사

솔루니 독서논술학원 원장 (회산)

관동문학회 사무국장,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영동수필문학회, 강릉문인협회, 강릉사랑문인회, 강원여성문학인회, 강릉여성문학인회 회원

수필집: 고드랫돌 소리(2013, 교음사)

씨앗(2018, 교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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