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의 한국인 성인(成人)

김영호 시인(숭실대 명예교수)

백우기자 | 기사입력시간 : 2019/01/30 [17:10] | 조회수 : 132

 

▲     © 한명희




시카고의 한국인 성인(成人)

 
그가 세상을 떠났음을 그의 어머니가
편지로 알려왔다. 1989년 봄 초빙교수로
하와이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였다.
그는 향년 43세의 독신이었다. 한국에서
가난과 병으로 신학대학을 중퇴한 그는
미국으로 와 중노동을 했다. 아픈 몸으로
시카고의 한 식당 주방 보조원으로 일하며
고국의 동생들 학비를 조달했다.
홀로되신 어머니는 생업능력이 부족하다며
자신이 동생들 셋을 부양해야 한다고 했다.
가족들을 위해 모든 수입을 송금하고
난방이 잘 안되는 아파트 마루바닥에서
시카고의 겨울, 그 혹한을 견뎌야 했다.*
식당의 고된 노동으로 신장병이 악화되어
쉬는 날은 누어 있어야 했음에도 그는 주변
사람들의 어려움을 돕기를 좋아했다.
그는 사람들을 좋아해 친구가 많았고
문학을 좋아해『現代文學』을 매달 구독했다.
어느 날 한 지인의 집에 페인트칠을 해주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큰 부상을 당했다.
시카고까지 급히 달려가 어바나 샴페인의
나의 캠퍼스 아파트로 그를 데려와
한 달간 요양을 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나 오래 쉴 수없는 처지라하며
아픈 몸을 이끌고 직장을 다시 나갔다.
그는 어렵게 오랜 세월 만에 영주권을 얻어
어머니와 동생들을 초청해 직장을 구해주고
몸져누워 오래 앓다가 세상을 뜬 것이었다.
그의 밥상은
그가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신문지였다.
 
*필자는 시카고에서 일을 할 때 그의 룸메이트였다.
이글을 삼가 하늘의 고 최식에게 헌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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