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깎던 밤 / 김혜진시인

한명희 | 기사입력 2018/11/28 [22:16]

사과 깎던 밤 / 김혜진시인

한명희 | 입력 : 2018/11/28 [22:16]

 

▲     © 한명희



사과 깎던 밤

  

김혜진

 



너도 언젠가는 엄마가 될 꺼 아니니

당신은 사과를 깎으며 말했다

말끝과 칼에 날이 서있다

나이도 이렇게 깎이면 얼마나 좋아

손 사이로 지그재그 내려오는

사과 껍질을 흘려보내며 말했다

일도 이렇게 술술 풀리면 얼마나 좋아

고개를 숙인 당신 정수리가 늙었다

당신이 한 입 베어 문 조각 사과 위로

잇몸 자국 자글자글한 주름이 선명했다

기껏 깎아놓고 먹지 않은 사과는 갈변한 검버섯이 피었다

엄마 사과 깎으면서 무슨 생각해

칼날의 힘에 못 이겨 끊겨버린 사과 껍질을 보며

딸이 큰소리로 외쳤다

사과 깎던 밤

칼을 내려놓고 벽을 바라본다

당신의 한탄,

당신의 주름,

당신의 검버섯 핀 얼굴

 

모두 닮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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