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깎던 밤
김혜진
너도 언젠가는 엄마가 될 꺼 아니니 당신은 사과를 깎으며 말했다 말끝과 칼에 날이 서있다 나이도 이렇게 깎이면 얼마나 좋아 손 사이로 지그재그 내려오는 사과 껍질을 흘려보내며 말했다 일도 이렇게 술술 풀리면 얼마나 좋아 고개를 숙인 당신 정수리가 늙었다 당신이 한 입 베어 문 조각 사과 위로 잇몸 자국 자글자글한 주름이 선명했다 기껏 깎아놓고 먹지 않은 사과는 갈변한 검버섯이 피었다 엄마 사과 깎으면서 무슨 생각해 칼날의 힘에 못 이겨 끊겨버린 사과 껍질을 보며 딸이 큰소리로 외쳤다 사과 깎던 밤 칼을 내려놓고 벽을 바라본다 당신의 한탄, 당신의 주름, 당신의 검버섯 핀 얼굴 모두 닮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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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별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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