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온 소포 / 고두현 시인

백우기자 | 기사입력시간 : 2019/02/21 [07:38] | 조회수 : 51

 

▲     ©한명희

 

늦게 온 소포

 

고두현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

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이다

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

어머님 겨울 안부 남족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빈 지붕만 지키는 쓸쓸함

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속엣 것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

소포 끈 찬찬히 풀다 보면 낯선 서울살이

찌든 생활의 겉꺼풀들도 하나씩 벗겨지고

오래 된 장갑 버선 한 짝

해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

펼져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 듯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개

 

[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댓다고 몃 개 따서

너어 보내니 춥을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

봄 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 어렵더라도 참고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리라]

 

헤쳐놓았던 몇 겹의 종이

다시 접었다 펼쳤다 밤새

남향의 문 닫지 못하고

무연히 콧등 시큰거려 내다 본 밖으로

새벽 눈발이 하얗게 손 흔들며

글썽글썽 녹고 있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