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불 / 정덕길시인

한명희 | 기사입력 2018/11/28 [22:45]

군불 / 정덕길시인

한명희 | 입력 : 2018/11/28 [22:45]

 

▲     © 한명희



군불

  

정덕길

 

  

 

맏이는 아버지 대신 아이가

할매의 부적을 평생

말라빠진 등에 지고 다닙니다

머나먼 밤길 뒤척이던

아버지의 한숨 얼어붙는 줄을

가녀린 겨울바람 한 점에도

경기를 하던 문풍지는 압니다

할 일없이 부지런한 장닭이

살얼음 낀 새벽을 깨기도 전에

아버지는 지게를 타고서

어둠 속으로 흐르듯 갑니다

변방의 오랑캐를 응징하고

개선하듯 마당을 들어서서

깔비와 솔가지를 엎지릅니다

대의에 목숨을 걸 줄 아는

장수의 전리품이 왠지 궁색한데

아버지는 식은 둥지를 데웁니다

저러면 눈이 아릴텐데

아버지는 생살 같은 생솔가지를

바삭바삭 맨몸으로 씹어서

고삐 풀린 불에게 먹입니다

불길이 사납게 날뛰더니

구들장을 향해 달려듭니다

세간살이 하나 없어도

좁아터진 창고나 다름없는 방

근심이 한 가득 출렁이는 사이로

어제 아래 저 아래 새어나온

한숨들이 섬처럼 떠다니고

아버지의 벌건 속이 거멓게 탑니다

아버지는 다시 도끼날을 세워

나무 등걸을 내리칩니다

아궁이가 찢기도록 장작을 물려도

서늘한 아버지의 등에는

타지 않는 부적이 고드름 같습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