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無等)을 보며 / 서정주시인

한명희시인 | 기사입력 2018/12/01 [10:46]

무등(無等)을 보며 / 서정주시인

한명희시인 | 입력 : 2018/12/01 [10:46]

 

▲     © 한명희



무등(無等)을 보며

 

서정주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樓)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靑山)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 밖엔 없다.

 

목숨이 가다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아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아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을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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